▲ 나현빈 (사)한국위험물학회 연구부회장, 부설 연구소 소장

지난 1월, 글로벌파이어파워(Global Firepower, GFP)의 '2024 글로벌 파이어파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5위의 군사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평가는 병력과 무기 수만 고려한 것이 아니라 경제력, 국방 예산 등 다양한 지표를 고려한 결과이다. 이는 최근에 천궁, K2 전차, K9 자주포 등 한국의 무기체계가 국제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로, 조선, 반도체, 정보통신 등의 우수한 국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 무기 개발 또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 방위산업계는 가격 대비 우수한 무기 성능과 빠른 납품을 강점으로 무기체계 수출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최근의 세계 안보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국내 방위산업체들은 그 기술력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수출 규모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지난 6월 대통령실 발표에 따르면 최근 2년간 방산 수출은 역대 최대 규모인 연평균 15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23년에는 수출 대상국 수가 12개국으로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

일반 제조업이 침체된 상황에서 K-방산의 급속한 성장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안보와 직결된 만큼 방위산업 특성상 발전 속도에 비해 관련 제도와 지원 체계는 그 속도를 충분하게 쫓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방위사업법이 우리 군의 군수품 조달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방산 수출의 급증이라는 현 상황에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안전기준과 제도가 방위산업의 트랜드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무기체계에서 핵심 소재인 화약류는 폭발물로, 사고 시 큰 인적·물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매우 엄격한 안전기준이 필요하다. 군용화약류는 민수용과 달리 방위사업청의 관리와 인허가를 받아야 하며, 제조와 저장, 운송 과정에서 철저한 안전 조치가 요구된다. 현재 군용화약류와 민수용 화약류는 서로 다른 법적 기준에 따라 관리되고 있어, 군용화약류에 대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통일된 안전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통상 위험물 분류에 적용되는 국제 기준은 UN의 위험물 운송에 관한 권고(RTDG)로, 폭발물의 위험성을 분류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안전 조치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방위사업법에서는 위험물의 분류에 이러한 국제기준을 명확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 해양운송(해양수산부령), 항공운송(항공안전법)에서 수출입을 위한 운송에서 국제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을 고려했을 때, 화약류의 수입 및 무기체계의 수출이 증가하는 현 상황에서 통일된 기준 체계의 도입이 시급하다.

또한, 방위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안전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무기체계의 제조는 기존의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의 변화가 진행 중이며, 첨단 무기체계의 개발 속도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하나의 무기체계에 특화된 생산라인이 하나의 제조공실에서 구축되어 생산되었으나, 현재는 탄종의 다변화, 거대화 등에 대응하여 다양한 무기체계를 생산할 수 있도록 공정 위주의 공실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제조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군용화약류의 제조공실 및 저장시설에 대한 인허가 기준과 과정 또한 유연하게 조정하여, 다양한 무기체계 생산을 지원해야 한다.

도시 팽창으로 인한 제조소 주위 환경 변화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제조시설과 인근 주거시설간의 안전거리는 Hopkinson 환산법칙에 기반한 양거리(Quantity-Distance)법을 적용하지만, 시설의 구조적 안전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미국, NATO 회원국 등 선진국에서는 보다 정확한 위험도 평가를 위해 순폭약량(NEWQD)법을 도입하거나, 전문적인 위험성평가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선진 기법을 도입하면 안전설비 구축을 바탕으로 근로자와 인근 주민의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제조환경을 합리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방위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해 2027년까지 방산 수출 4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발표했다. 방위산업은 안보와 직결된 특성상 다른 산업과는 구별되는 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K-방산의 혁신을 지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안전기준이 재정립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