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교식 교수

얼마전 개봉해 재미있게 봤던 영화 ‘Loving Vincent’와 그에 얽힌 그림 얘기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간단한 줄거리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 후 1년 뒤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아르망’은 그의 그림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빈센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장소로 찾아가 미스터리한 죽음을 추적해 나갑니다. ‘빈센트’를 그리워하는 여인 ‘마르그리트’, ‘빈센트’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던 ‘아들린’, ‘빈센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닥터 ‘폴 가셰’ 등을 차례로 혹은 번갈아 만나면서 ‘아르망’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간 ‘빈센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알아가게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긴 여운이 남는 장면들이 이어졌습니다. Vincent van Gogh의 작품을 연결하면서 만든 스토리는 큰 역할을 못한 듯(혹은 안한 듯) 하나 고흐의 그림풍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은 너무 좋았습니다. 정신이상으로 자살했다는 내용보다는 천재의 명화를 긴 시간 감상했다는 만족감으로 며칠이 뿌듯했습니다. 또한 엔딩 롤이 올라갈 때 나왔던 Don McLean이 만들고 불렀던, 그러나 영화관에서는 여가수가 부른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는 고흐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하지요.

▲ 그림1(좌) 고흐 ‘The Starry Night’  그림2(우) 콘세라 안티코 ‘To Infinity and Beyond’

배경이 된 고흐의 그림은 우리가 보는 밤하늘과 많이 다릅니다. 달과 별 주변의 밤하늘에는 빛이 흐릅니다. 별도, 달도, 그리고 사이프러스 나무도 모두 불타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시 앓고 있던 약한 정신병적인 영향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즉 실제 고흐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어쩌면 고흐를 비롯한 많은 천재 미술가들이 4색형 색각(Tetrachromats)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색깔을 자세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망막 위에 존재하는 약 700만 개의 원추세포 덕분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세 종류의 원추세포를 지닌다죠. 빨강, 녹색, 파랑색의 가시광선을 인식하는 적추체, 녹추체, 청추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원추세포가 두 종류밖에 없는 이를 정상인 삼색자(三色者, trichromat)와 구별해 이색자(二色者, dichromat)라고 한다네요. 거의 모든 동물은 이색자이며, 인간의 색깔 구분 능력과 대적할 수 있는 동물은 새들과 자외선 영역을 감지할 수 있는 일부 곤충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약 100만(100×100×100)개의 색을 구분합니다. 색맹은 원추세포가 2개여서 만개(100×100)의 색상만 구분가능 합니다.

만일 원추세포가 4개인 사람이 있다면 이들이 구분하는 색은 1억(100×100×100×100)가지가 됩니다.
사색자의 존재가 최초로 확인된 것은 2010년 영국 뉴캐슬대학의 신경학자 가브리엘데 조던 박사팀에 의해서입니다.

조던 박사팀은 무려 20년간의 연구 끝에 마침내 완벽한 사색자를 발견했다죠. 영국 북부에 사는 의사인 이 여성은 ‘cDa29’라는 실험실의 명칭으로만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색맹이 X염색체가 하나뿐인 남성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듯이, 사색자는 두 개의 X염색체에 모두 변이가 있어야 네 종류의 원추세포를 가지게 되므로 이론적으로는 여성들 중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네요.

색을 인식하는 원추세포의 유전자는 X염색체에 존재하기 때문이죠. 2012년에 사색자임이 확인된 콘세타 안티코라는 여성이 운영하는 웹사이트(www.concettaantico.com)를 방문하여 보면 그녀의 그림이 놀랍도록 고흐의 그림과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그림2는 그녀가 그린 은하수인 ‘To Infinity and Beyond’라는 그림입니다.

그녀는 나뭇잎을 볼 때 그저 녹색만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가장자리를 따라 주황색과 붉은색, 자주색이 보이며, 잎의 그림자 부분에서는 짙은 녹색 대신 보라색, 청록색, 파란색이 보인다는 것. 마치 인상파 화가의 작품처럼 온 세상의 색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듯이 보이는 모양입니다.

어린 시절 색맹검사때 표를 보면서 왜 이런 걸 읽지 못하지 라는 의문을 품었는데, Tetrachromats들이 우릴 보면서 참 한심하게 봤을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우리는 천재들을 평범한 우리의 잣대로 너무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