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부 차원의 건설안전 컨트롤 타워의 일원화 ‘필요’
건설현장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발주자 중심의 안전관리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안전관리과 소속 기성호 재난과학박사는 시공사와 발주자, 공직자의 경험을 통한 올라운더 융합형 건설안전분야의 전문인이다. 굴지의 민간건설 시공사 안전관리자 출신으로 오랫동안 현장 실무경험을 쌓은 이후 현재 발주처인 서울시에서 건설안전을 총괄하고 있다. 또 재난과학박사로서 공사참여자의 안전 활동 개선을 위한 위험성평가 모델 적용에 관한 연구 등 학술적 해법 마련을 위해 매진 중이다. 그는 대한민국 안전 패러다임의 변화와 공사장 안전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사참여자의 수준 높은 질과 그들의 강도 높은 책임 부여로 부터 시작된다고 역설한다. 특히 기 박사는 “체계적이며 완벽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건설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건설 현장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발주자 중심의 안전관리와 범정부 차원의 건설안전 컨트롤 타워의 일원화가 필요하다”며 “시공사와 발주자, 공직자의 경험을 토대로 건설안전의 판을 다시금 정비하고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들이 현장에서 좀 더 인간적인 대우를 받도록 노력하는 등 건설안전 적폐를 해소하는 작은 밀알이 되고 싶다”라고 희망했다. 

- 먼저,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사업 및 담당 업무에 대한 소개 바랍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댐 공사, 철탑공사를 제외한 교량, 터널, 리모델링 등 서울시 도시기반 확충을 위한 건설관련 오만가지 사업을 다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올 한해 예산규모는 1조 7,845억 원이며, 주요 사업으로는 도로인프라 확충, 공공건축물 건립, 환경·수해방지시설 조성, 도시철도망 확충 등입니다. 안전관리과 일원인 저는 안전정책 마련, 교육평가, 부실벌점 부과 등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발주 공사현장의 건설안전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013년 7명이 사망한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그리고 2명이 사망한 방화대교 접속도로 붕괴사고를 계기로 발주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과 역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에 발주처 안전관리 담당자로서 설계분야, 계약분야, 시공분야 등 공사장 안전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51개의 종합대책을 마련, 활발히 추진 중에 있습니다.”

‘3불(不) 대책’으로 건설업 혁신!
하도급 불공정, 부실공사 근절!

-올해 캐치프레이즈와 역점 사업은 어떻게 되는지요. 

“‘안전하고 편리하며 오래가는 도시인프라 구축’이 올해 서울시 우리 본부의 비전입니다. 대표적인 역점 사업으로는 건설업 혁신을 위한 ‘3불(不) 대책’ 추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실상 모든 건설업의 근원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는 불공정 하도급에서 시작됩니다. 서울시는 이에 불공정 부조리를 해소하고 건설업체간 상생기반을 구축해 건설근로자의 처우개선과 안전사고 예방을 동시에 이뤄나가고 건설업 분야 경제민주화를 위한 ‘건설업 혁신대책-3불 추방정책’를 시행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여기서 3불(不)은 “하도급 불(不)공정”, “근로자 불(不)안”, “부(不)실공사”를 말합니다.”

- 3불(不) 대책안을 보면, 박원순표 서울시의 안전대책 특화사업에 대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박원순 시장님의 시정 철학 강조 아래 서울시는 발주자로서의 주인의식을 갖고 정교하고 품격 높은 시설물을 안전하게 건설해 시민에게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있습니다. 또 안전사고의 피해자인 흙수저라 지칭되는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예로 종전에는 실제 공사의 대부분을 하도급 업체가 시공하면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기를 무리하게 단축하고 임금을 낮게 지급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는데,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서울시 의지는 단호합니다. 즉, 시가 수립한 3불(不) 대책안은 기술·시공 능력이 없는 부실업체나 수주한 공사를 시공하지 않고 모두 하도급하는 페이퍼컴퍼니를 퇴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건설공사장의 안전바이블 마련
‘건설안전 기본지침’ 개발·적용

- 서울시 공사 현장 및 품질 안전 관리 점검은 어떻게 하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시행 사업으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강도 높고 수준 높은 점검을 위해 분야별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매월 123개 건설 공사장에 대한 불시 안전점검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적사항이 재발되거나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매월 부실벌점위원회를 개최해 벌점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또한 착공 초기 건설공사장은 컨설팅 지원을 통하여 Set Up을 실시하고 있으며 사고 예방을 위해 건설공사장의 안전바이블인 ‘건설안전 기본지침’을 개발하고 공사참여자들로 하여금 이를 숙지하기 위한 교육과 평가를 년2회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 안전관리 담당자로서 우리나라 안전관리 실태를 진단한다면.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기술진흥법 등에 근거한 현행 건설공사 안전관리 제도는 오랜 동안의 시행착오를 겪어 오면서 안전사고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온 것이 사실이지만, 건설공사장에서 매년 600여명이 사망하고 23,000여명의 재해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관점에서 안전관리제도의 개선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재해의 발생 가능성은 건설현장에서 계속 높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발주자 중심의 안전관리
건설안전 컨트롤 일원화 

▲본지 발행인 이선자 사장과 대담을 하고 있는 기성호 박사

- 건설재해를 현격히 줄이기 위해, 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대안은 무엇인지요.

“저는 두 가지 대안을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건설 현장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발주자 중심의 안전관리’와 ‘범정부 차원의 건설안전 컨트롤 타워의 일원화’를 통해 대한민국 건설안전의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러려면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예 맞습니다. 효과적인 안전관리를 위해서는 현행 우리나라 건설안전 제도 개선이 꼭 필요합니다. 공사비와 공사기간과 같은 무리한 공사조건 등 시공자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그동안 배제되어 왔던 발주자와 감리자의 책임과 역할을 유도한다면 선진 외국처럼 건설재해를 현저히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건설 재해 예방을 위한 정부의 컨트롤 타워 또한 일원화하여야 합니다. 현재 고용노동부 주관의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와 고용관계에 따라 원수급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는 반면, 건설기술진흥법은 발주자 및 설계자, 감리자를 대상으로 책임과 의무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두 개 부처가 각기 다른 법령을 적용함에 따라 건설공사 수행 과정에서 체계적인 안전관리에 어려움이 뒤따르고, 중복 규제로 인한 불편과 혼선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 개선은 필수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도 영국의 CDM처럼 원도급사인 건설사 중심의 현 안전관리에서 벗어나 발주자-설계자-감리자-시공자-협력업체-근로자 등 다양한 공사참여자의 의사결정 권한에 따라 공정하게 안전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고 봅니다. ”

건설안전 문제 해결의 ‘밀알’
교육의 질 ‘UP’, 법 제재 ‘강화’

- 안전전문가로서의 바람, 꿈이 궁금합니다.

“기회가 되면 그간 쌓은 전문 경력을 바탕으로 후학 양성에 힘써보고 싶습니다. 좀 더 나아가서는 전문가의 시각으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책 입안자로서 대한민국의 안전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보고 싶습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목소리만을 대변하려는 것이 아닌, 온전히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대한민국 건설안전의 적폐들을 청산하고, 그간 극복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밀알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건설안전 분야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가칭 ‘한국건설안전학회’를 설립하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안전발전을 위해 흩어진 다양한 의견들을 학문적 가치와 소명 아래 한 목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 건설사고 저감은 물론 건설인, 안전인이 존중받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 이번 기회에 박사님의 안전관리 소신이나 철학도 듣고 싶습니다.

“‘수준 높은 안전을 위한 2가지 조건은 첫째, 조직에 있는 사람들의 높은 질, 둘째, 그들에게 철저히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레커는 안전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이 같이 말했습니다. 제 소신과 철학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즉, 다양한 공사참여자에 대한 높은 질을 위해서는 지금의 부실한 교육 체계로는 어림없다고 보며, 교육 관련 제도 혁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두 번째는 책임에 대한 것으로, 반드시 권한에 비례하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징벌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시는군요.

“아는 분으로부터 프랑스에서 겪었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한 번은 우연히 이른 새벽에 현지 숙소 창문 너머로 교차로를 내려다 보게 되었는데,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수많은 차들이 예외없이 신호등과 정지선을 정확히 지키더라는 겁니다. 다음날 ‘선진국은 역시 안전문화가 대단하다!’ 라고 말했더니 현지 가이드가 대답하기를 ‘여기서는 누구도 감히 그 신호와 정지선을 넘고자 도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겁니다. 천문학적인 과태료와 같은 어마어마한 법적 응징이 뒤따르기 때문에 지킬 수 밖에 없는 선진국 안전 시스템이 우리 눈에는 그저 수준 높은 안전문화로 보여지는 것 뿐이죠.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양한 공사참여자와 기업에 대한 보다 강도 높은 책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산업재해를 줄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빠르고 확실한 한 가지가 엄격한 법적 제재라고 단언합니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사망재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기업이 망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한다면 안전이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의 변화가 시작될 겁니다. 즉 자본주의 국가에서 수준 높은 안전을 기대한다면 ‘안전은 곧 돈’이라는 공식만 만들어 주면 됩니다. 돈을 벌려는 자는 돈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지요”

<대담= 이선자 발행인>
<정리= 윤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