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호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 본부장

사례 하나. 지난 4월 4일 울산의 한 정유회사에서 원유 저장탱크에 균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2시간 가까이 원유가 탱크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원유탱크 주변에는 유출된 기름을 임시로 가둘 수 있는 방유제(DIKE)가 설치되어 있었다. 흘러나온 기름은 방유제에 가두어졌고, 신속히 임시탱크로 옮겨졌다. 탱크에서 흘러나온 원유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들었더라면 2년 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에 버금가는 환경오염사고가 발생할 뻔 했다. 위험물 저장시설 주변에 방유제 설치를 의무화 한 법적 안전기준을 지킨 결과가 엄청난 사고를 막은 것이다.

사례 둘. 이십여 년 전 쯤 일이다. 용접을 할 때 화상 방지를 위해 용접공이 착용하는 용접장갑은 제조 또는 수입업자가 법으로 정한 형식검정을 받아야 수입, 제조, 판매가 가능한 제품이었다. 그러나 제조, 수입업자들은 용접장갑의 품질이 국제기준을 충족할 만큼 좋아졌다는 이유로 법으로 정한 검정대상에서 제외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얼마 후 용접장갑은 검정대상에서 제외됐고, 안전성에 대한 확인절차 없이 생산과 수입이 가능해졌다. 그 후 중국 등에서 저가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가격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국내 용접장갑 생산업체는 결국 모두 문을 닫게 됐고, 연간 150억원 규모의 용접장갑 시장을 다른 나라 업체에 내 줘야 했다.

사례 셋. 유럽은 우리나라의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 수준의 화학물질 규제법령인 REACH(신화학물질관리제도)제도를 2007년 발효한 바 있다. 새로운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경우 이에 대한 위험성을 제조 또는 수입업자가 입증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도입이 자국 기업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비등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던 유럽의 업체들에게 개발도상국의 추격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들의 물질에 대한 실험자료를 다른 나라 업체에 판매해 수익도 챙기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규제를 합리적으로 완화하지 않으면 기업경영에 어려움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기업 경쟁력에 걸림돌로 작용하거나 투자의욕을 꺾는 지나친 진입규제는 없애거나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규제는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규제이다.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사례는 안전보건에 관한 규제가 불필요한 것인지, 적정한 규제가 국민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안전보건에 관한 규제와 기업 경쟁력이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안전보건 분야는 당장에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할 경우 더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지켜야 할 기본과 원칙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다.

안전보건이나 환경과 같은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회적 규제는 엄격히 말해 규제라기 보다는 혁신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고발생 등으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규제를 만들거나 기업의 입맛에 맞게 무조건 규제를 철폐하기 보다는 정부, 기업,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혁신차원의 변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사회의 안전보건에 관한 인식수준과 안전문화가 성숙되어야 해결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