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호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 전문기술위원실 실장

지난해 말 서해안에 소재한 국내 굴지의 제철단지내 한 공장에서 정비점검 작업중이던 근로자 9명이 독성가스에 중독되어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병원에 실려 가는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대기업이 경영하는 이 제철회사 단지내에서는 지난 한해만 12명의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언론은 물론, 국회, 정부, 노동계로 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던 차에 대형사고가 다시 발생한 것이다. 재해발생 공장은 정부로부터 작업중지명령을 받아 가동이 정지되고 특별근로감독과 안전보건진단 명령을 받아야 하는 등 전방위적인 제재가 가해지고 있었다.

마침 필자는 진단반에 편성되어 사고현장을 직접 보고 경영진을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최고경영진이 참담한 표정으로 진단반을 향해 무겁게 한마디 던졌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기름 한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비싼 가스를 전기 만드는데 못쓰게 해 공중에 태워버려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더했다. ‘태워버리는 가스량이 하루 2억5천만원어치고 이 에너지로 전력생산을 하면 하루 3억원의 매출이 발생하는데 발전설비 가동정지 명령으로 매일 5억5천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제철회사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가스를 받아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회사였다. 독성이 강한 일산화탄소 성분이 다량 포함된 가스를 수만톤씩 이송받아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가스 누출과 중독 위험이 상존하고 있었다. 이번 사고의 원인도 현장의 예열기 정비점검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스를 보일러에 투입해 발전을 하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그러나 이 회사는 사고 발생의 원인이 된 가스가 어디에서 누출되어 중독이 발생한 것인지 원인(Roots Cause)을 규명하고 같은 재해의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생산차질에 따른 손실만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최근 수십건의 산업재해로 12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고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은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듯 보였다.

발전설비재가동은 가동정지 후 1개월이 지나 진단과 개선이 완료된 후에 이루어졌다. 결국 이 회사에는 150억원 이상의 생산손실이 발생했고 사고 보상, 과태료, 보험요율 증가, 진단비용, 회사 이미지 추락 등 직간접손실액을 합치면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되었다. 이 손실비용의 10%만 사전에 안전관리에 투자했더라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근로자가 고귀한 생명을 잃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손실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업재해는 근로자의 생명과 경영자의 지갑을 노린다.

기업의 경영은 생존전략에 있고 기업의 생존전략은 이익추구가 아니라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산업재해는 대표적인 손실요소로 기업경영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안전보건의 책무를 준수하는 것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경영자들이 안전보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안전을 경영과는 별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안전관리를 사고처리 또는 보험에 의한 사후관리 수준에 머무르거나, 안전관리자를 선임하거나 안전대행기관에 위탁 계약한 것만으로 그 책무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관리는 사람에 대한 관리이다. 전기, 가스, 에너지관리가 설비에 대한 안전성 유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산업안전관리는 일하는 사람이 보호대상인 동시에 안전관리의 대상이다. 많은 전문가가 관리만 제대로 해도 산업재해의 절반은 줄일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경영자는 안전에 관한 방침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안전관리 조직체계를 갖추고 각 계층별 교육을 통해 일터에 잠재해 있는 위험을 스스로 찾아내는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해 가는 안전경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