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양수 SK이노베이션 SHE본부 본부장

IChemE(The Institute of Chemical Engineers)로부터 기조연사로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지난 4월 16일부터 3일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열린 Hazards Asia Pacific Symposium에 다녀왔다.
IChemE는 1922년 영국에서 설립되어 120여 개국 35,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화학공정분야 세계적 전문기관으로, 유럽지역에서만 해오던 Hazards Symp-osium을 2011년부터 아·태지역으로 대상을 확대한 Hazards Asia Pacific Symposium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25개국에서 총 250명 정도가 참석하였는데, 일반참가자들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국가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기조연사 및 발표자 상당수는 유럽 및 미국의 정부기관, 학계 및 산업계 인사들이었다.

이번 행사에서 필자는 ‘How to Improve Safety Culture’라는 주제로 필자가 근무하는 SK이노베이션에서 최근 수행한 일련의 안전관련 활동 사례를 중심으로 안전문화 향상 방안에 대해 발표를 했고, 다른 발표자들을 통해 화학공장의 안전과 관련한 최신기술과 세계적 추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의 특색은 발표내용이 안전분야에서 세계최고 수준인 회사 사례로부터 동남아나 중국 등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국가의 사례까지, 다양한 간접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인데, 이를 통해서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안전관리 수준에 따라 안전수준 향상을 위해 어떠한 분야에 집중하고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할지에 대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화학공장 안전의 핵심 요소는 사람(People), 설비(Asset), 그리고 관리체계(System)를 들 수 있는데, 본 지면을 빌어 이번에 보고 느꼈던 내용들을 이 세가지 요소별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People)
사람과 관련해서 우선 인상적인 부분은 기조연사로 참석한 BASF나 Dupont 등의 글로벌 기업 안전담당 임원들이 모두 공정운전을 담당하는 생산부서 출신이라 점이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 선진회사들은 안전관리를 생산활동의 일부로서 생산부서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생산부서 사람들 모두 안전에 대해 잘 알고, 안전관련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역점을 둔다고 한다. 또한, 안전전문가는 공정에 대한 경험을 거친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선발하여 육성한다고 한다. 반면에 안전관리 수준이 아직 높지 않은 회사들은 안전관리를 생산활동과는 별개로 분리해 안전부서의 일로 여기고 안전부서에서 책임지도록 한다고 한다.
한편, 이번 심포지움에서 안전과 관련한 사람 차원의 리스크로 베이비 부머 세대의 대거 은퇴, 회사의 M&A 등으로 인한 조직 및 인력의 불연속성 문제가 많이 거론되었으며, 이러한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사람차원의 안전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력변경관리(Human Management of Change), 조직변경관리(Organizational Change Management) 등이 제시되고 있었다. 이러한 기법들은 특정한 직무에 대해 담당자가 바뀔 때, 새롭게 해당 직무를 맡을 사람이 안전과 관련한 충분한 역량을 보유했는지 사전에 검토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사람과 관련한 또 다른 한 축으로는 협력업체 인력들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가 많이 거론되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공장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협력업체의 활용이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협력업체관련 사고도 함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으로 기존에 직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리가 취약했던 협력회사 직원들의 안전의식과 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활성화 되고 있었다. 설비

(Asset)설비
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공정의 설계-건설-운전-유지보수-폐기 등의 전 과정에 걸친 Life Cycle 별 적절한 위험성 평가와 그 결과에 따른 보완대책 이행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많은 공정들이 최초의 설계수명을 초과하여 운전되고 있는데, 이런 노후 공정들의 위험성을 어떻게 차별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한편, 어떤 전문가는 일부 회사들이 경제성에 지나치게 천착한 나머지 위험성 평가 결과에 따른 안전투자를 최소화 할 목적으로 위험성 평가 시 그 위험도를 의도적으로 낮게 산정하는 사례가 있음을 경고하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위험성 평가가 경제성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위험성평가의 방법으로는 기존에 널리 활용중인 정성적 평가기법(HAZOP)을 기본으로 하고, 정량적 평가기법(LOPA, QRA 등)을 추가로 적용하는 추세인데, 정량적 평가의 경우 핵심 입력자료인 발생빈도/가능성 산정 시 공정 노후 정도나 관리수준에 따른 차이를 어떻게 반영 하느냐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다.
또한, 정량적 위험성 평가와 연계한 공정 위험성을 낮추는 방호막으로 SIS(Safety Instrument System)나 SIL(Safety Integrity Level) 등 경보(Alarm)나 가동정지(Shutdown) 관련 계기의 신뢰도를 높이는 기법도 점차 확대 적용되는 추세였다.

관리체계(System)
중국이나 동남아 일부 회사들은 선진회사들을 벤치마킹하여 안전관리체계의 완성도를 높이고 문서화 된 절차를 정교하게 다듬는 것을 관리체계 향상의 주요활동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반해, 일정 수준이상의 안전관리체계가 구축된 선진회사들은 시스템의 실행과 이행성 향상에 초점을 두고, 구성원의 행동변화(Behavior Change)를 이끌어 내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행동변화를 위한 방법으로는 Shell社의 Minds & Hearts 등으로 대표되는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Safety Golden Rules, No Tolerance Rules 등으로 불리는 엄격한 규율을 시행하는 등 강온 양면의 수단을 함께 적용하고 있었다.

Symposium 기간 중에 만났던 Dupont社 싱가폴 공장의 안전팀장과의 대화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할까 한다. 안전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라는 Dupont의 안전관리에 대해 궁금한 사항들을 질문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안전에는 지름길이 없다(no shortcuts to safety)는 말과 함께 안전관련 기준과 절차는 아무리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예외 없이 지킨다”는 너무나도 교과서적인 내용이었고, Dupont 구성원들은 회사의 Safety First문화를 DNA로 받아들여 그걸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최신의 설비와 세계일류 수준의 관리체계를 구비하더라도, 결국 이것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영진과 구성원 모두가 안전에 대한 확고한 의식과 실천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Symposium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