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양수 SK이노베이션 SHE본부 본부장

하루에 받는 스팸 메일의 수는 얼마나 되고, 그것을 지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계십니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 업무를 위한 e mail 계정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로 몇 개의 추가 계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도 회사 업무용 e mail 계정과 개인적인 용도의 e mail 계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업무용 e mail 계정으로는 스팸 메일의 수가 적은 편이고 매일 도착한 메일을 확인하는 편이라 즉시 지우지만,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계정은 가끔씩 열어 보기 때문에 볼 때마다 잔뜩 쌓인 스팸 메일은 지우기도 귀찮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전체 선택을 하여 한 번에 클릭하여 지우기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가끔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얼마 전 개인 메일을 열어 보니 아니다 다를까 온통 광고인 메일이 잔뜩 쌓여 있길래 전체 선택을 하고 지우기를 누르는 순간, 그 중에 포함된 오래 동안 만나지 못했던 해외에 나가 있는 친구의 편지가 보였습니다. Enter key를 누르고 있는 상태라 손가락만 떼면 오랜 친구의 메일은 열어 보지도 못하고 사라질 운명에 있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신중하지 못한 저의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해 보았습니다.

2005년 일본의 증권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증권거래인이 1주에 60만엔 이나 하는 고가의 주식 1주를 매도해 달라는 주문을 하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증권거래인은 순간적으로 컴퓨터에 입력을 잘못하여 60만 엔에 1주를 매도한다는 주문을 거꾸로 1엔에 60만주를 매도하겠다는 주문으로 바꾸어 입력하는 사고를 저지르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거래는 이루어 지고 말았고 이로 인해 증권사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증권사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2010년 국내 어느 증권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미국 달러 선물스프레드 매수 주문을 받고 0.8원에 15000개의 주문을 입력한다는 것이 그만 80원으로 입력하는 바람에, 15초 만에 거래가 성사되어 120억 원대의 손실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금융가에서 컴퓨터 입력 잘못으로 인한 금융사고를 일컬어 Fat Finger Error라고 이야기합니다. 손가락이 굵어 컴퓨터 자판을 정확하게 누르지 못한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입력할 때 좀 더 신중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 들입니다.스팸 메일을 지울 때 중요한 메일까지 같이 지워버리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런 일은 비단 증권사나 은행과 같은 금융권에서만 일어 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의 생산설비들은 대부분 자동화되어 중앙조정실에서 컴퓨터로 운전되는 곳이 많습니다. 중앙조정실에서 조절하지 않는 설비라 할지라도 수치제어시스템을 이용한 설비들이 대부분이라 기계에 수치를 입력하고 enter Key를 누르면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기계들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생산 현장에서도 Fat Finger Error와 유사한 사고들이 종종 발생합니다.생산공장장으로 근무하던 중 겪었던 사고 경험입니다. 저희 공장에는 폐 가스를 이용하여 증기를 만드는 보일러가 있었습니다. 이 보일러의 운전은 대부분 중앙조정실에 이루어지고 중앙조정실 근무자가 보일러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 보일러가 최고의 조건으로 운전될 수 있도록 조절합니다. 보일러의 운전은 폐 가스의 성분에 따라 폐 가스를 태우는데 필요한 공기의 량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필요한 공기의 량이 더 필요하면 컴퓨터에서 Alarm을 보내 조치를 하라고 신호를 줍니다. 보통 조절량은 매우 적어서 조금씩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게 됩니다. 마치 TV를 보면서 볼륨을 크게 하거나 자게 하는 것처럼 키를 누를 때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방식입니다. 공기 량을 조절하는 조절기는 열리고 닫히는 정도를 %로 나타내는 방식으로, 100%면 완전히 열리고 0%는 완전히 닫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날 이 조절기는 83%로 운전되고 있었는데 폐 가스의 성분이 변화되면서 공기 량을 늘려야 했습니다. 늘릴 때는 증가Key를 계속 누르면 조금씩 열리게 되어 있는데, 이 날 근무자는 85%까지 한꺼번에 필요한 량만큼 열게 하려고 증가 Key를 누르지 않고 숫자 입력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실수로 ‘85’를 입력한다는 것이 ‘8’ 만 입력하고 enter key를 눌러버렸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공기조절기가 83% 열려 있다가 8%까지 순간적으로 닫혀버리니 필요한 공기 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컴퓨터에 미리 저장된 프로그램은 이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르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보일러가 자동적으로 꺼지게 명령하였고 보일러는 순간적으로 가동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런 유형의 사고는 과거에도 가끔씩 발생하여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직접 숫자를 입력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정해 두었지만 근무자들은 마음이 급할 때는 종종 이런 일이 있었음을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Fat Finger Error는 손가락이 굵어서 생긴 Error 라고 애칭(?)하지만 실제로는 주의력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사고입니다. 점점 자동화 되고 편리해 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더 많고 그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많은 낭패를 초래 할 수 있는 Fat Finger Error를 예방하는 방법은, 집중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특히 산업현장에서의 주의력 산만은 과거에 비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자동화가 될 수록 더 많은 주의력을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