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양수 SK이노베이션 SHE본부 본부장

멀티 태스크

장면 #1
얼마 전 세종시에 갔다가 큰 봉변을 겪을 뻔 했다. 세종시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모임이 있었는데, 초행길이라 식당에 전화를 해서 위치를 물었더니 KTX 오송역에서 택시로 30여분 거리에 있다고 하면서 내비게이션에 나오니 쉽게 찾아 올 수 있다고 했다. 알려준 대로 오송역에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이야기 하니 환갑도 넘은 연세의 기사아저씨는 차를 출발하면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려고 했다. 그러나, 입력하는데 계속 문제가 생겼다. 어떤 연유인지 차가 출발 하고 한참 지날 동안 계속 내비게이션을 만지는 것이었다. 은근히 불안하기 시작했지만 아무 소리하지 않고 묵묵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오송역에서 세종청사 가는 길은 통행하는 차량 수도 많지 않고 새로 만들어진 길이라 도로 사정이 좋았다.
그런데, 기사아저씨는 이 길을 아주 빠른 속도로 운행하면서 계속 내비게이션과 씨름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어느 순간 차선을 벗어나면서 중앙선을 침범하고 말았다. 다행히 반대 차선의 차가 일찍 발견하고 클랙슨을 울리며 비켜 지나갔다. 순간 등골이 서늘함을 느꼈고, 조금 늦어도 상관없으니 갓길에 차를 세운 후에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라고 이야기했다. 그제서야 기사아저씨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차를 갓길에 세웠다.

장면 #2
2012년 5월 1일, 경북 의성에서 여자사이클 선수단이 국도를 따라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한적한 국도의 갓길을 따라 훈련하던 선수들에게 길가던 트럭이 덮쳐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선수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깜깜한 밤중도 아니고 훤한 대낮에, 그것도 인적이 한적한 도로에서 별안간 트럭이 이들을 덮을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사고 조사결과, 원인은 너무나 어처구니없었다. 운전기사가 운전 중에 DMB를 시청하다가 전방을 보지 못하여 일어난 일이었다. 트럭 운전기사는 경력 41년에 그 길을 12년 동안 매일 같이 다니던 길이라고 했다.

장면 #3
1972년 12월 29일 23시 42분. 미국 뉴욕 공항을 떠나 마이애미로 향하던 이스턴 항공 401편의 기장은 마이애미 국제 공항에 착륙하려다 문제를 발견했다. 랜딩 기어를 작동했는데도 지시등에 녹색 불이 들어 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이 경우 실제로 랜딩 기어가 작동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단순히 램프 고장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관제탑에 이 사실을 알리고, 고도를 약 600미터까지 높여 상공을 선회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기장은 부기장을 호출하여 원인 파악을 지시했으나 부기장도 뾰족한 답을 내 놓지 못했고, 일등 기관사를 불러 원인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다 보니 비행기에는 조종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모두 등이 들어 오지 않은 원인을 찾는데 골몰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비행기의 고도는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설정된 고도를 이탈했다는 경고음이 울렸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기장은 고도가 너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으나 너무 늦었다. 비행기는 땅바닥으로 추락하면서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승객과 승무원 176명 중 101명이 사망한 끔찍한 사고였다.

세가지 사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멀티태스킹(Multitasking) 이다. ‘멀티태스킹’이라는 용어는 원래 컴퓨터 분야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컴퓨터 하나로 두 가지 이상의 프로세스를 동시에 처리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이 덕분에 우리는 문서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영화도 다운로드 받거나 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의 머리도 컴퓨터와 같다고 생각하고 일터에서도 멀티태스킹이 관행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문서를 작성하면서 걸려온 전화를 응대하기도 하고, 생산 현장에서도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계기를 조절하기도 한다.
멀티태스킹은 현대사회의 맹목적인 신화 중의 하나이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우리 주의가 짧은 시간에 여러 업무로 왔다 갔다 할 뿐이라고 연구 결과는 이야기한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1초에 수 천 번씩 여러 프로세스를 오가며 처리하기 때문에 엄밀히 보면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짧은 시간에 워낙 빨리 오고 가기 때문에 동시에 처리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위의 세 가지 사고는 인간은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는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운전을 하면서 내비게이션을 조작하거나, DMB를 시청하는 것은 정상적으로 운전 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하다. 이스턴 항공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비행기를 조정하면서 다른 문제 해결을 찾는다는 것은 비행기 조종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힐 때가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전연 다르다. 우리의 주의를 두 가지의 의식적 활동으로 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많은 연구 결과가 이야기해 준다. 특정 상황에서는 두 가지 활동 모두를 인식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리 간단한 일이라도 동시에 두 가지 의식적 결정을 할 수는 없다. 물론 길을 걸으며 껌을 씹는다거나, 운전을 하면서 옆 사람과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오랜 연습을 거쳐 두 활동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 활동의 대부분은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전개될 만큼 오래도록 연습된 행동들이 아니다.

최근 어느 신문의 조사 결과를 보니 수험생이나 고시 준비생들이 스마트폰을 버리고 구형 핸드폰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공부에 집중하고 싶은데 자꾸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들, 즉 음악듣기, 뉴스보기 등으로 인해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산업현장에는 여러 가지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숨어 있다. 집중하여도 사고가 일어 날 수 있는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다가 집중력을 잃고 불행한 일을 당 할 수 있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해야만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